아래 글은 동물 시험에 의해 규정된 "결정적 시기"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눈을 돌보는 직업에는 크게 안과의와 검안의, 두 가지가 있다. 안과의는 일반적으로 인체와 질병에 관해 배우며 의대에서 4년을 보내는 의사들이다. 안과의는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수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약물과 수술을 통해 눈의 장애와 질병을 치료하는 법을 공부하지만 시훈련치료를 하지는 않는다. 테레사 루지에로와 같은 검안의들은 눈, 시각, 뇌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4년제 검안의대를 다닌다. 루지에로 선생은 검안 시훈련치료라는 고유한 분야 때문에 검안학을 택했다. 그녀는 눈과 뇌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도록 훈련시켜서, 시각 문제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돕고 싶었다.
검안 시훈련치료는 시각 교정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각 교정술은 원래 사시의 눈을 정렬하기 위해 고안된 일련의 치료법들이다.
이 요법에는 베이츠 요법(거의 모든 시력 문제가 눈의 습관적 긴장에서 비롯되며, 안경은 해롭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안과의 윌리엄 베이츠가 개발한 대체요법)이나 맑게 보기 요법(안경, 콘택트렌즈, 눈 수술을 대신해서 시각을 향상시킨다고 광고하며, 부분적으로 베이츠 요법을 근거로 한 눈훈련 프로그램)과 같은 대중적인 자조 기법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시각 교정술은 1800년대 후반 프랑스 안과의였던 루이 에밀 자발이 개발한 시각교정 절차를 토대로 한다. 에밀 자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좀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치료를 개선하고, 에스페란토어를 국제공용어로 채택할 것을 지지하는 사회개혁가였다. 뿐만 아니라, 글을 읽는 동안 눈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최초로 측정한 사람이었다.
에밀 자발은 아버지와 누이가 사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돕기 위해(그가 눈 근육의 대량학살이라 부르던) 당시의 조잡한 수술에 대한 대안으로서 여러 치료기법을 개발했다. 여러 치료기법들은 효과가 있었지만, 그러기까지는 종종 오랜 연습시간이 필요했다.
1900년대를 기점으로 오늘날까지(특히 미국의) 안과의들은 계속해서 사시의 치료법으로 수술에 집중했다. 1장에서 언급했듯이, 실험실의 실험들은 생애 초기에 있는 ‘결정적 시기’ 동안 눈이 어긋나면 양안 뉴런이 발달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많은 의사들은 이 실험결과를 정상적 양안시와 입체시는 초기 몇 년 동안에만 발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1900년대 후반의 안과의들은 사시인 영아들을 생후 1년 안에 수술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어린 아이들에게 실시한 수술은 입체시의 발달을 감안할 때 부분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소아 안과의들이 영아들에게 수술을 시행했기 때문에 사시의 치료법으로서 다른 요법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기들은 시훈련치료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한 것이다. 안과의들은 일부 요법들을 처방하는 전문가 집단인 시각교정사(orthoptist)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시술만 했다. 에밀 자발이 애초에 개발한 시각 교정기법들을 완성하고 확장시킨 사람들은 안과의들이 아니라, 1900년대 중반 소규모로 활동하던 검안의들이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프레드릭 브록,윌리엄 루드램 그리고 기타 검안의들은 시각훈련을 통해 사시인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이 훈련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수술을 받은 적 없는) 149명의 환자들이 12주 동안 일주일에 두 번 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 75퍼센트의 환자들이 똑바른 눈과 입체시를 동반한 안정된 양안시를 뽐내었다. 이후 더 이상 다른 치료를 받지 않고, 몇 년 뒤 다시 진찰을 받았을 때도 그들의 눈은 여전히 똑바로 정렬되어 있었고, 입체시를 동반해서 보았다. 특히 흥미로운것은 생후 1년 안에 사시가 되었던 환자들의 절반이 입체시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실 연구들과 모순되는 결과였다. 몇몇 다른 연구자들도 이 중요하고 혁신적인 연구들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결정적 시기라는 개념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아주 초기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지를 받으면서 이 보고서들은 대개 무시되었다.
검안의들은 언제나 렌즈 개발 및 설계 분야에서 최전선에 있었다. 최초의 콘택트렌즈뿐만 아니라 저시력 기구(심각하게 시각을 상실한 사람들이 읽고 멀리 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도 그들이 개발하고 설계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안의들이 렌즈와 프리즘을 사용하는 요법들을 개선했다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검안의들은 시각,자세,운동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각 운동 기술을 훈련하는 것을 치료절차에 포함시켰다.1971년, 각별히 시훈련치료에 관심이 있는 검안의들이 모인 소규모 단체가 요법의 규약을 표준화하고 엄격한 검안 시훈련치료 자격시험을 개발하기 위해 시각발달 검안의학회(COVD)를 설립했다. 자격시험을 통과한 검안의들은 COVD의 특별회원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특별회원인 검안의는 400명뿐이지만, 시훈련치료의 기법들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마 그 외에도 500명쯤 더 있을 것이다.
“3차원의 기적” 중문 에서...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뇌로 본다.
1900년대 중반 이래로 과학계와 의학계는 사시 그리고 약시(amblyopia)라 불리는 관련 장애를, 어린 시절의 결정적 시기 안에 교정하지 않으면 시각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의키는 발달장애의 대표 사례로 꼽았다. 이런 생각은 어느 정도 데이비드 허블과 코르스텐 비셀이 하버드 의대에서 했던 실험을(우리 교수님이 강의에서 말씀하셨던 그 고양이에 관한 실험을)토대로 나온 것이 었다.
실험의 고양이처럼 나 또한 영아기 이후로는 눈이 어긋나 있었을 것이다. 만일 내 두눈이 똑바로 정렬되어 있어서 둘 다 같은 사물을 바라 보았다면 각 눈으로부터 정보를 실어 나르는 뉴런들은 내 시각겉질에 있는 양안 뉴런들로 똑같은 입력을 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들은 똑바르지 않아서 서로 다른 것을 보았으므로, 뇌 안의 양안 뉴런들은 모순되는 입력을 받았다. 이 상황이 두 눈 사이에 경쟁을 유발했고, 하나하나의 뉴런을 두고 벌인 경쟁에서 어느 한쪽 눈이 승리를 차지한 것이다. 내 뇌 안의 각 뉴런은 이제 단지 한쪽 눈에서 오는 입력에만 반응했다. 이런 변화가 필시 내 생애 첫 해 동안에 일어났을 것이다. 내 눈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겉보기에도 똑바르지 않았다. 일곱 살 무렵에는 결정적 시기가 닫혀버렷고, 내 뇌는 입체시를 못보도록 배선되었던 것이다. 대학에서 시각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관해 읽으면서,나는 내 시각이 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훨씬 더 최근의 과학 연구는 성인의 뇌가 예전에 알던 것보다 더 가소적(plastic)"이라는 것을, 다시 말해 재배선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가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 뇌의 각부분에 있는 회로는 평생에 걸쳐 변화한다. 뇌영상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과학을 통해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관찰 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라도 점자책을 읽는 법을 배우면, 뇌 안에서 점자를 읽는 검지에서 촉각 입력을 받는 뉴런의 개수가 증가한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오른손을 써서 활을 움직이고 왼손의 손가락들로 현을 누른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왼손의 손가락들이 오른손의 손가락보다 더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1990년대, 과학자들은 자기를 이용한 영상을 찍어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뇌를 연구해서, 그들의 운동겉질(운동피질,motor cortex)에 있는 뉴런들은 오른손보다 왼손의 손가락들을 조절하는 데 더 많이 바쳐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차원의 기적 1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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