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입시 관련 사이트 '오르비'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
사수는 운명
오수는 病身
나는 이제 기꺼이 病身이 되고자 한다.
컴퓨터 시간이 19분 밖에 안남은 관계로 길게 수기를 쓸 수도 없고
구차하게 과거를 들추어내어 변명같이 자질구레하게 늘어놓기도 싫어서
내가 왜 사수까지 하게 되었는 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신론자라서 그런지 번번히 장애요인이 나타나 나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서 우울증이 찾아와 약까지 받아먹고 있다.
나는 소신이 있다. 남이 보면 고집일 수도 있고 아집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겐 굽힐 수 없는 소신이다.
뭐 잘난 척 한다고 그 소신이란 게 뭔지는 말 안하겠다.
너무 잡담이 길어졌나 보다 이 사이트와 관계된 내용으로 방향을 바꿔야 겠다.
내가 비젼테라피를 받고자 결심하게 된 건 4번째 수능을 마치고 난 날 허탈한 마음에 쓸쓸히 집으로 너털너털 걸어오다가 내가 난독증이 아닌가 싶어서 집에 돌아와 '난독증'으로 검색해서 알아내 받고자 결심하게 된 것이다.
고 3때 내 머리를 정말 매일 매일 맑고 팽팽 잘 돌아갔다. 하지만 환경이 안따라줬다.
고등학교 배정을 잘못 받은 것이다. 아니 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 선택한 것이었다.
중학교때 나는 중상위권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시 전교 1등이 평균 95점 대 정도였는 데, 나는 시험을 못 봐도 평균 80점 후반에서 잘 봤을 땐 91-2점 언저리를 맴돌기도 했었던 것 같다.
참 웃기지도 않는게 TV의 호기심 천국에 나오는 전석천이라는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 숭문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이 떠올라 배정희망 고등학교 1지망에 숭문을 써버렸다. 나 외에도 다른 많은 같은 반 친구들이 숭문을 썼으리라 생각했었는 데, 우리반에선 나 혼자였다. 학교 통틀어 3명이 숭문으로 갔다. 전부 안면만 간신히 아는 얘들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우관계 쌓기에 몰두를 했다. 그러고도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는 성적이 괜찮았다. 1학기 중간 평균이 91점이었던 것 같다. 수학은 당시에 수학 학원을 다녀서 그랬던 건지 난생 처음으로 100점을 받아봤다.
그런데 교우관계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성적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2학년 때 가장 친하던 친구녀석이 같은 학교에 자기를 아는 동네 양아치를 동원해서 팼던 아이가 있어서 더 이상 못 다니겠다고 전학을 가버리더니 곧이어 자살을 해버렸다.
2학년 말 수능까지 한번 내달려 보자고 학교 앞 고시원에서 살기 시작했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 공부시간이 안났던것도 한 이유였고 고시원이라 공부환경이 더 쾌적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아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구차하게 과거를 들추어 내고 말았다.
지금까지 쓴 글을 다 지워버리려고 하려다 그냥 올리련다.
누군가는 이글을 여기까지는 읽었을까 ?
하여튼 하고픈 말은 고3때까지만 해도 난 언어영역을 공부를 안해도 3등급정도는 기본으로 나왔었다. 글 읽을때 약간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래도 정신이 맑았기에 문학시간에 모의고사 한 문제 풀고 맞은 사람 손들고를 할 때 같은 반 얘들 삼분의 이 이상이 못 맞춘 문제들도 꽤 빈번히 맞추고 빠르게 풀었었다.
근데 문제는 환경인지라 첫 수능은 망할 수 밖에 없었다.
첫 수능에서 가장 잘 본 과목은 영어였는 데 2등급이었다.
이게 내가 여태 본 수능 성적 중 가장 좋은 거다. 2등급 91% 백분율인가 그랬다.
남은 시간이 8초 밖에 안남아서 나중에 이어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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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어서 쓴다.
하여튼간에 나는 고3때는 집에만 오면 저녁 6-7시였고, 내가 체질상 잠을 12시간 정도는 자야지 다음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 당시 이명박 서울 시장이 버스전용차선이니 뭐니 하면서 만든 것 때문에 통학시간이 무진장 길어지고 불규칙해졌다. 그래서 지각도 밥먹듯이 하게 되고 정말 엄청 짜증났다. 지금은 초록 버스도 전용 차로로 다니지만 당시 초창기에는 파란 버스와 빨간 버스인 광역 버스들만이 다닐 수 있어서 대가 통학시 이용한 일반 초록 버스는 출근길 차량들과 함께 좁아진 도로에서 뒤엉켜 거북이 걸음을 했다. 진짜 버스에서 뛰어내려 걸어가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다. )
그리고 당시 고3때 교우관계도 급격히 나빠져서 도저히 학업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자퇴하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2때면 몰라도 고3되서 자퇴하겠다는 녀석은 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자퇴하려면 하라고 하셨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그냥 학교를 계속 다닐 수 밖에 없었다.
학교 생활 1년이 하루하루 지옥같았다.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기도 따분했고 얼른 졸업해서 재수 생활을 했으면 하는 마음만 굴뚝 같았다. 역시 고인물은 썩는다고 교원평가제는 꼭 필요한 것이다. 추첨으로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은 이유가 숭문고에는 있었다. 당시 그 지역에 똥통이라고 소문이 자자해 오는 아이들이 없으니 지망하는 얘들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주제에 자립형 사립고로 바뀌어서 아무 얘들이나 막 받아드리던 내가 다닐때와는 달라졌지만 신문을 보니 입학 경쟁률이 겨우 0.99대 1밖에 안됐다. 입학 심사가 있으나 마나한 거였다. 중 3 때 내 같은 반 절친들과 같이 이대부고를 지망했으면 내 인생은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중 3 말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사이가 좀 소원해져서 인지 얘들이 나만 빼놓고 이대부고로 다들 가버렸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이후 몇번 만나서 놀기도 했지만 현재는 연락 두절인 상태들이다. 어쩄든 학교가 똥통이라 수업이란게 교과서를 앞에서 선생님이 똑같이 읽어주고 교과서에 있는 문제 좀 선생 혼자서 칠판에 풀어주는 게 다였다. 대부분 아이들이 학원에서 공부했지 학교에서는 그냥 자거나 멀뚱이 있거나 딴짓을 했다. 이래서 공산주의가 망하는 것이다. 경쟁이 있어야 되지 경쟁없이 공평히 균등 분배하려면 날던 사람도 땅에서 기게 되어 있다.
고 3 때 수업시간에 수업은 안하고 혼자서 자율학습하는 시간이 많아졌는 데, 나는 그 때 수능공부는 안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교양과학서적만 읽어댔다. 숭문고의 좋은 점이 딱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타 학교에는 찾아보기 힘든 많은 장서수를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점심 때 급식을 먹고 나는 매일같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적이고 책을 빌려다 보았다. 내가 고3일 당시 급식실 앞에 짓기 시작한 새 빌딩이 현재는 완공되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나는 그 빌딩을 이용해보지도 못하고 정작 고 3때 공사소음만 고스란히 입었다. 88년생 숭문고생들만 뭐 된 꼴이었다. 그러면서 체육 선생은 우리들보고 꼴통들이니 뭐니 수업시간마다 칠판 앞에서 중얼거리고 뭐 발가락 힘을 길러야 된다니 고3인 우리들보고 운동장에서 한발로 서서 균형 잡는 연습을 시키고 중간이나 기말고사 떄 실기로 고3인 우리들에게 슈팅 시험을 보게 했다. 웃기는 일들이었다.
어쨌든 이런 지옥같은 생활을 벗어던지고 그렇게 갈망하던 재수생활에 뛰어들었다.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나 홀로 공부하고 싶었다. 사실 사람을 만나거나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싫었다. 그들의 존재감도 싫고 무엇보다 그 망할 놈의 '두중'이란 것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말실수를 연발하고 쉽게 다황하며 바보같이 행동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내가 '시지각 테파리'를 받으러 사수를 끝나고 청담동까지 다닌 주된 이유가 바로 이 '두중'때문이었다. 비젼 센터의 홈페이지를 보던 도중 시기능 장애에 의해 머리 무거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글귀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학원이라곤 내가 중1 되기 전에 종합 학원 한 두달 다닌 것하고 고 1,2 겨울방학때 동네 수학학원 좀 다닌 것 밖에 없었지만 학원이란 데에 회의감이 강하게 들었다. '어짜피 받아드리는 건 <나(Me!)>아닌가 ? 책을 통해서 학습을 하던 칠판 앞에서 떠들는 선생의 목소리를 듣던 내가 벽창호가 되면 말짱꽝이고 칠판에서 떠드는 선생과 모니터 안에서 떠드는 온라인 강의 선생하고 다를 바가 뭐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공부하기로 했다.
근데 이 빌어먹을 지역이 독서실 환경이 역악했다. 근처의 독서실은 언덕 위에 있고 버스노선이 바로 옆을 지나가서 하루종일 버스 공회전 소리가 나고 바로 옆에서 가스통을 유통저장하는 곳이 있어서 무쇠로 된 가스통 실고 내리는 소리가 요란히 나면서도 한 달에 20만원씩 받고 있었다.
동네 백과 상의 모든 독서실을 다 다녀보았지만 만족스러운 데가 없었다. 한 40분 거리에 있고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서대문 도서관'은 무료였지만 올라가는데 힘들고 거리가 멀고 버스편도 없어서 몇 주 다니다가 말았다. 더구나 시설도 형편 없었다. 그래서 혼자 집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방에 독서실 책상 사다놓고 거기서 공부하나 한달에 20만원씩 주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오히려 방에서 공부하는 게 돈 절약되고 옆 사람 신경 안쓰이고 더 좋을 거라는 판단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고3 겨울방학때 집안 형편상 이사를 가게 되었는 데 그게 아파트 1층이었다. 그 곳이 지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이상한 건지 아파트가 이상한건지 나만 싸이코 취급받고 이상한 사람취급받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정상이고 이 아파트를 지은 설계자가 이런 소음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24시간 아이고 어른이고 뛰어다니는 발소리에 짜증이 나서 ( 당시 가정 불화로 짜증이 쉽게 나는 상태였다. ) 엘레베이터 옆에다가 상부상조하고 역지사지 좀 해달라고 A4 용지에 글귀를 적어 붙여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죽고 싶다 내가 왜 그 짓을 했는 지 그냥 참고 살걸...
몇 칠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사람들이 일부러 뛰어다니는 것 같아서 더 괴로워 졌다. 발소리 그 자체보다 사람들의 심보를 생각하게 되어 괴로웠다.
나는 결국 아파트 관리 소장을 찾아뵙게 되었다. 누구나가 예상할 수 있듯이 관리소장은 내 편이 아니었다. 아파트 관리비에서 조금만 갹출해서 매트를 깔면 발소리에 1층 사람들이 고통을 안 받고 아이들도 맘껏 뛰어다닐 수 있을 텐데 뭐 매트에 휠체어가 걸리고 하이힐이 걸려서 안된다나 뭐라나 ... 정말 기가 찼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매트에 걸려서 넘어지면 자기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안된다고 말하기까지 하셨다. 나는 그에 대해 반례를 들어보였다. 얘들이 바보냐고 그 매트에 걸려넘어지면 도로 양 옆의 보도에도 걸려넘어지겠다고 응수를 했다. 그러니까 관리소장과 부장이니 뭐니하는 땅딸만한 아저씨가 그 것과 이걸 어떻게 비교하냐 면서 성을 냈다. 정말 환장할 노릇었다.
어찌어찌 옥신각신 해서 한달 후에 우리집이 있는 105동 3,4라인만 무기명 투표를 하여 매트를 깔것인지 하자고 내가 제의를 했는 데, 사무소측에서 말도 없이 자기네들 멋대로 거지같은 매트를 구해 깔아버렸다. 그날 3,4라인 세대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 후 관리소장은 내 뜻대로 무기명 투표를 실시했고 대부분의 세대들이 무시를 해버리고 그나마 투표에 참여해준 세대들도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니 설득력이 없다니 하면서 반대를 하여 4대 9로 반대처리가 되었다.
소장은 내가 갸륵했던지 경사로 부근의 매트일부만 몇달간 더 놔두시고는 나머지는 싹다 걷어가셨다.
이 아파트로 이사와서 입은 소음피해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파트가 부실시공이었는 지 층간소음이 3층의 내방 위에서 하루종일 뛰어노는 남자 아이의 발소리가 하루종일 들렸다. 3M 귀마개를 껴도 크게 들릴 정도였다. 괜히 찾아가서 조금만 양해해달라고 면대면으로 얘기했다가 이웃간에 싸움이 날까봐 새벽에 가서 현관문 앞에 쪽지를 붙이고 왔는 데, 어찌어찌하다보니까 그 집 아저씨가 술에 취해서 우리집 앞에와서 행패를 부리고 갔다.
1-2년간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집안 형편도 안 좋은데 물리 1 참고서에 나와있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란 걸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부모님을 설득해 구매했다. 하지만 그것도 별 효과는 없었다. 귀마개를 끼고 그 비싼 헤드폰을 껴도 3층 아이의 발소리는 들렸다. 정말 하루종일 엘레베이터 복도 뛰어다니는 악의에 차보이는 인간들의 발소리와 3층 아이의 순진무구한 탭댄스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또 컴퓨터 시간이 별로 남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토요일인지라 제한 시간이 1시간 30분이나 되서 좀 길게 주저리 주저리 쓰고 싶은 대로 막 써봤다. 비젼 테라피에 대한 내용은 뒤에 나오는 데 다음에 이어서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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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토요일만 1시간 30분 할 수 있게 해놓고 다른 요일에는 30분 밖에 못 하게 해놔서 오늘은 조금밖에 더 못 쓸 것 같다. 현재 18분 남아있다.
여하튼 그 지옥같은 아파트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다. 이제는 심적으로나 실제 물리적으로나 어느정도 안정된 상태이다. 하지만 이사온지 3년이 되가는 데 이 3년간은 정말 지옥이었고 어쩌면 내가 사수까지 하게된 큰 원인들 중 하나일 것이다.
양도세 감면혜택을 받으려면 3년은 살아야 된다고 해서 산것이다.
부모님과 내 누나까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문제가 있다고 보니 타인이 보면 어찌 생각할까 ?
하지만 정말 고통을 받았다는 건 사실이다. 내가 뭣하러 시간은 낭비하며 난리법석을 떨었겠는가 ?
내 방에서 3년간 지내보지 못했으면 말을 하지 말아줬으면 했다.
그 누구도 내방에서 지내본 적이 없으니 나만 바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방으로도 방을 바꿔보았다. 할머니가 뇌경색으로 요양원에 실려가시기 전에 할머니 방과 바꿔보았지만 그 쪽 방은 아파트 구조상 문제인지 뭔가 물새는 소리가 새벽까지 요란히 계속 났다. 오히려 새벽에 더 심해졌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3M 귀마개를 끼고 있는 것도 귀가 진물이나고 외이도염 걸리고 짜증나서 못해먹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싸이코가 되기로 작정을 했다. 이야기의 앞뒤가 안 맞게 되었지만 관리소장에게 따지러 가기전에 나는 내 방의 방음설비를 내 스스로 했다. 완벽한 설비를 갖추는 데 그간 공부도 못하고 한 달이 걸렸다. 이렇게 오래걸릴 줄 알았으면 시도도 안했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괴상망측한 설비였다. 모두 내가 구상하고 만든 것들인데 현재는 아파트를 내놓은 상태여서 다 뜯어내고 정상으로 회복된 상태이다.
우선은 실리콘으로 문짝을 완전히 봉해버렸다. 그리고 바깥에는 보기 흉하니까 안쪽에만 차음매트를 사다가 붙이고 ( 보기보다 꽤나 무겁고 묵직하다. ) 일명 계란판이라고 불리우는 흡음 스펀지를 골이 깊은 걸로 붙였다. 그리고 안쪽 틈새에도 실리콘을 잔뜩 발랐다. 그리고는 다용도실로 연결된 창문을 통해서 드나들기로 했다. 다용도실은 부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용도실 창문이 바로 놀이터 바깥으로 나 있어서 문제였다. 환기를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바깥 공기와 방 공기가 통해야 살 수 있는 건데... 놀이터 소음이 장난이 아니었다. 놀이터에서 우리집 다용도 실 쪽을 바라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용도실에서 놀이터를 바라보면 코 앞인데다가 속삭이는 소리까지 또렷히 들렸다. 미칠 노릇이었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 누군가가 건의를 했던지 놀이터를 아침 8시부터 밤 7시까지만 개방이 되어있게 쇠창살문과 담으로 놀이터를 둘러싸놔져있었다. 그래서 낮시간에 얘들이 뛰어놀고 소리지르고 철제 미끄럼틀위로 뛰어다니는 소리는 괜찮았다.
밤낮을 바꿔 생활하면 되니까 . 근데 이 빌어먹을 아파트가 도로 쪽으로 나 있는 담장이 낮아서 밤이나 새벽시간때에 동네 양아치들의 집합장소였다. 깔깔대고 술마시고 주정부리고 병깨고 소리지르고 경비실에 호출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미안해서 죄스러웠다.
정말 빌어먹을 아파트다. 이세상의 모든 아파트 1층은 사라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아파트 단지내에 1층 세대가 우리집만 있는 건 아니다. 근데 왜 유별나게 나만 이러느냐고 ? 내 생각은 이렇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하고 남들이 안한다고 해서 안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내 기준으로 내 판단으로 행동해야지 이리 휘둘리고 저리휘둘리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로보트이다. 내가 시끄러우면 시끄러운거지. 아마 다른 1층세대에는 수험생이 없거나 있어도 멀리 떨어진 독서실 다니면서 괜히 집에서 공부하려 하지 않으려 하거나 아예 공부를 포기한 얘들만 있는 것 같다. 소음때문에 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괜히 단지내 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관리소장과 싸움이 날까봐 참고 사는 것 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내 주관대로 행동했다.
내가 이렇게 소음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길게 여기다 쓴것은 시지각 센터의 선생님께서 하나의 방도를 일러 주셨기에 그게 제게 얼마나 큰 희망이 되었는 지 알리고자 쓴 것이다.
테라피 받을 때 제 고통을 토로하자 선생님께서 '베라르 연구소'를 소개해주셨다.
어쩌면 내 귀가 너무 예민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아직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내 귀에 문제가 있는 걸로 판명이 났으면 한다.
다음 주 중으로 받아볼 예정이다.
컴퓨터 시간이 47초 남아서 이만 글을 줄인다. 내일 또 이어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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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금씩 쓰다보니 내가 보기에도 구차하고 비젼테라피에 관계없는 얘기만 잔뜩 써놓은 거 같다.
이제부턴 비젼 테라피 얘기만 쓰겠다. 오늘은 12분 밖에 안 남았다.
하여튼 나는 3년간 집에서만 공부했고 수능을 4번쳤고 4번다 망했고, 앞으로 한 번 더 볼 예정이다.
내가 최선을 다 했을까 ? 난 목적과 수단이 일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부를 즐겼을 뿐이다.
그런데 수험생은 점수를 높여야 수험생이지 혼자서 연구를 한다면 그건 연구자일 뿐이었다. ( 이 말은 어제 밤 런닝머신을 하면서 TV에서 본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말이다. 유명 강사가 강의때 한 말. )
난 이게 시각 이상인 줄도 몰랐다.
두번째 수능을 볼때쯤부터 이상하게 글을 읽으면 내용이 생각이 안났고, 글귀를 읽으면 활자로만 다가 오지 이해가 빠르게 되질 않았다. 분명 그 이전엔 이러지 않았다. 고3때는 팽팽 돌아가던 머리도 이상하게 자꾸 머리가 꽉찬 느낌이 들면서 머리를 둔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증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는 데 고등학교 때는 없어졌다가 재수를 시작하면서 다시 생긴 것이다.
우울증으로 신경정신과에 찾아갔을 때 이에 대해 물어봤지만 선생님께서도 모르시는 듯했다.
시간이 4분 남았는 데 나중에 이어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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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2분 남은 상태이다.
내일 베라르 연구소에 다녀오려고 예약을 해둔 상태이다.
사실 취업후 학자금 대출이 이유도 없이 신청 불가이고 상담원은 전산오류일 수도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라 해서 조금 우울한 상태여서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몇 자 또 끄적여본다.
이 글 쓰는 데 할애하는 시간이 커져서 빨리 줄이고 싶다.
취업후 학자금 대출이 안되면 일반상환이라도 해야 겠다. 일반 상환은 신청 승인이 난 상태이니...
( 비젼센터 선생님, 이 글 보고 계시다면 좀 만 더 기다리시면 입금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필터 렌즈 안경하고 조절 테라피 렌즈 4개 값 말입니다. )
하여튼 나는 어쩌면 이 비젼 테라피라는 게 내 가장 큰 문제인 '두중'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여기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청담동까지 다니기로 했다. 왕복 2시간 4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비젼 센터 사이트에서 잡지에 게재된 비젼 센터 건물의 사진을 봐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한국 시지각 센터'는 거창한 이름에는 걸맞지 않게 참으로 가정적이고 아담해보였다. 그래서 나빴다는 게 아니다. 푸근하고 뭐랄까 참으로 가정적인 분위기가 났다.
처음같을 때는 보조 선생님이 안계셨지만 비젼 테라피에서 근무하시고 계신 선생님은 총 3분이신 거 같다. 그 중 한 남자 보조선생님은 처음가서 시기능 검사 받을 때 계산해주셨던 것만 빼고는 나와 거의 상대하실 일이 없으셨다.
처음 가서 시기능 검사를 할때 선생님께서 친절히 공부방법이며 제 증세에 대한 얘기며 상세하고 친절하게 해주셨다. 검사 결과 나는 양안을 모으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책을 볼때 양안이 몰리는 데 그게 잘 안되면 눈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가고 눈은 자율신경이라 그 스트레스를 못느끼지만 뇌는 이 것을 감지해 다른 방식으로 눈에 스트레스가 오고 있다고 전한다는 게 선생님의 내 '두중'에 대한 설명이셨다. 만약 시각 때문에 '두중'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다른 자율신경의 과부하나 문제로 인한 것일 거라고 하셨다.
내가 이 비젼 테라피에 오기전에는 이 '두중'의 원인이 '음허화동'아니면 '경추의 문제' 아니면 '뇌혈류 문제'아니면 '혈당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음허화동은 한의학상으로 음기보다 양기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란다. 라디오 건강 코너에서 한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증세가 나와 똑같아서 그 분이 말씀하신 음허화동에 좋다는 복분자 액기스도 4번 째 수능 보기 몇 달 전 부터 먹어봤다. 그러나 별 효능이 없었다. 지식인에서 음허화동에 대해 물어보니 복분자보다 하수오란게 더 좋단다. 답변해주신 분이 이제 30대가 되신 분이었는 데 자신도 그 두중때문에 꽤나 고생했다며 장난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군대 가서 전방의 맑은 공기 쐬면 좀 나아질거라고 말해줬다. 아직 하수오란건 안 먹어봤다.
어쨌든 나는 회당 7만원이라는 우리집 형편에 비해서도 부담이 큰 이 비젼 테라피라는 걸 받기로 했다.
39초 남아서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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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건너뛰어서 다시 이어서 쓰는 데 오늘로써 수기 이어서 쓰는 건 마감하고 싶다.
자꾸 쓰다보니 중독되는 것 같다.
비젼 센터에서 소개해주신 베라르 연구소에 그저께 가서 검사를 받았는 데, 당행히도(?) 이상이 있다고 나왔다. 그래서 어제까지 합해서 2회째 청각 교정을 받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여기는 베라르 연구소 사이트가 아니니까 비젼 테라피에 대한 것만 쓰겠다.
첫 회차 비젼 테라피를 받으러 갔을 때 나는 집안 형편이 넉넉치 못하고 가능한 짧게 끝내고 싶다고 해서 선생님께서 5회로 졸업시켜주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셨다. 보통은 대개 15-20회정도는 한다는 것 같았다.
첫 날 프리즘 세트와 안구운동을 했는 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 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갔다. 두 선생님 모두 친절하셨고 하고 나니까 눈이 좀 시렸지만 머리는 좀 맑아진 것 같았다.
첫 날에 비젼 테라피 16차를 받으러 온 재수를 한 분과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얘기를 나눠 보니 그 분께서 확실히 효과가 있다면서 자신은 어떠어떠한 이유로 여기에 왔으며 등등을 설명해줘서 계속 다니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분이 쓰신 수기가 제 수기 바로 밑에 있던 것 같은 데...
그리고 우리집에서 비젼 센터까지 거리가 지하철과 버스로 1시간 20분 거리여서 자주 갈 수 없기에 일주일에 한번씩만 가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총 5회만 받아도 굉장히 나아질 거라고 하셨다. 사실 빈도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횟수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자전거 타는 것도 한번만 배우면 이후 몇년이 지나서도 잘 탈 수 있는 것처럼 비젼 테라피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두번째 날에 갔을 때는 조절 테라피라는 것을 했다. 그리고 프리즘 훈련을 하고 안구운동을 했다. 두번째 날은 내 뒤의 사람이 못 온다고 해서 보통 받는 것보다 두배는 더 훈련시켜 주셨다. 눈이 좀 시큰시큰했지만 뿌득했다.
셋쨋날은 둘쨋날 받은 걸 한번 더 하고, 넷쨋날에는 뇌의 입체감 형성 훈련을 하였다. 이는 먼 곳과 가까운 곳 여기저기로 시점을 옮길 때마다 눈이 선명해지는 걸 빠르게 하는 훈련이라고 하셨다. 우선 아바타 볼 때 쓰는 안경같은 적녹안경을 쓰고 특수 제작된 적녹 판을 좌우로 조금씩 밀었다 빼면서 훈련을 하였다. 그냥 적녹 안경으로만으로도 훈련을 하고 프리즘과 동시에 훈련을 하기도 했다.
다섯 째 날에는 이태까지 한 것을 빠르게 총 복습을 하고 시기능 검사를 다시한번 더 해주셨다. 그리고 나서 처음 왔을 때 받았던 검사 결과와 비교해보니 많이 나아진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책 읽을 때 이해력이 높아 질 수 있다는 파란 필터의 렌즈에다가 Addition을 넣어서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특수 맞춤 안경도 주문해주셨다. 그리고 조절 테라피 렌즈 4개도 구입했다.
5회차로는 좀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전보다 신문같은 걸 읽을 때 눈이 더 편안하고 절도있게 움직이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이 테라피를 받고자 하시는 분은 받으시기를 적극 권유한다.
휴 ~~ 드디어 수기 다썼다.
( 아 그리고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선생님, 제가 학자금 대출 건이 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되어서 우선은 조절 테라피 렌즈값 8만원만 입금 시켜드릴 께요. 약간 좀 번거로우시겠지만 지금 인터넷 뱅킹으로 오천원 송금해드리고 나머지 7만 5천원은 금일 목요일 중에 무통장 입금 해드리겠습니다. 필터 렌즈 안경은 주문이 들어간 상태나요 ? 이번 주 중으로 그 안경 값도 입금시켜드리려고 노력을 해보겠습니다만 아마도 다음 주 중에나 입금이 가능할 것 같은 데 괜찮지요 ? 주문이 된 상태이면 안경을 보관하시고 계시다가 입금이 되면 바로 좀 보내주셨으면 하네요. 자세한 것은 금일 중으로 전화한 번 드리겠습니다. )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