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문서
   
 
 
 
 
 
banner
 
 
 
Home > 체험기 > 학습장애/엘렌/사시/약시
 
160
 
그 때의 처절함을 그 어떤 단어, 문장, 글로도 형용할 수 없음을 미리 말하고 싶다.
 
최광진
2012.02.08

<서두>
지금 글로는 쓰고는 있지만 그 때의 처절함을 그 어떤 단어, 문장, 글로도 형용할 수 없음을 미리 말하고 싶다.


<고통>
고통은 소리도 없이 예고도 없이 나에게 갑자기 찾아왔다. 내게 2006년 해가 저물고 본격적인 고 3생활이 시작될 무렵 고2 겨울방학 초기는 좌절의 나날이었다.
청각을 잃은 베토벤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작곡가가 작곡을 해야 하듯 고3은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글씨는 볼 수 있었는데, 독해가 불가능 했다고 해야 되나……. 눈은 분명 글씨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도통 뭘 읽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만 움직인다. 그냥 움직이기만 할뿐이다. 뇌에겐 어떤 정보도 전달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글을 꼭 두세 번씩 반복해서 읽게 되고 영어는 아예 해석이 안돼서 단어 하나하나 뜯어봐야만했다. 너무 느리다. 너무 비효율적이다. 신졍질이 난다. 책을 덮어버린다.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그네들이 말하듯이 나또한 처음에는 이런 증상들이 일시적인 것인 줄만 알았다. 고3이 되면 누구나 겪는 입시의 스트레스인 줄 알았다.
안경원, 개인안과, 대학병원, 안경사, 안과의, 대학교수, 프리즘, 사위, 부등시, 맞춘 안경만 1개월 동안 5개. 영어단어와 수학공식 따위를 외우고 있어야할 내가 안가본데가 없고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금전은 금전대로 나가며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갔다. 하루하루의 치료의기대가 그날그날로 무너지며 절망감은 배가 되었고 자연히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꿈이 그리 쉽게 무너지며 무너질 리도 도, 무너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다시일어나 책을 잡으면 내 눈은 또다시 내 발목을 잡아 내 의지를 무너뜨렸다.
용기만 있다면 잡고 있던 펜으로 눈을 찔러버리고 싶었다.


<희망>
미친 듯이 찾았던 것 같다. 모순적이지만, 더 이상은 내 몸이 내 꿈을 망치게 놔둘 순 없었다. 인터넷이든 전화로든 뒤질 대로 뒤졌다. 원인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내가 비젼테라피를 알게 되고 선생님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니, 내 고통을 해결해줄 무언가가 이 땅에 있다는 것은 절망의 끝자락에 다다른 한 인간에게 비춰진 창틈의 한줄기 빛이었다고 나는 지금 생각한다.
다음날 곧바로 연구소를 찾았다. 처음으로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너무 감정에 치우쳐 쓴 것 같기 도하다. 허나 그만큼 필자의 심정이 처절했음을 느낄 순없지만 느껴주길 바란다.-

<치료 1차시 ~3차시>
첫날 연구소에 갔을 땐 선생님과 오래 상담을 했다. 속이 홀가분했다. 당나귀 귀 임금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선생님께선 내가 겪고 있는 증상, 책을 볼 때의 화면(어느 누구도 그때까지 이해 못한)을 이해하고 계셨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안도가 되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검안을 했고, 당일 약간의 훈련을 했다. 처음 3차시 까지는 그렇게 낳아진 점이 없었기 때문에 내심 불안했고 의심도 됐었지만, 어쩔 것인가. 다른 방도가 있으며, 안 해본방법이 있는가. 그냥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지금 느끼는 것이지만, 특히, 환자와 시술자간의 믿음은 치료의 든든한 기둥이다.


<치료4차시~8차시>
통합능력과 조절능력에 대한 집중적인 훈련을 감행했다. 아침10시부터 오후 2,3시까지 훈련했다. 팔도 아프고 눈도 아팠지만 “음. 거 쉬어가면서 해~ 응..”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훈훈하다. 거의 5시간 내내 성심껏 감독해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훈련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최첨단 기계도, 최첨단 시스템도 아니었다. 몇몇 소도구들과 카드가 전부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직했다. 3차시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4차시부터 횟수가 더할수록 점점 달라지는 내 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그날마다 집에 와서 독해지문을 보면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나는 내 눈이 다시 예전의 그 눈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9차시~ 마지막>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 치료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시간도 많이 흘렀다. 안경을 계속적으로 바꿔가며 최종안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너무 좋.아.졌.다…….
내일이면 개학이다. 두 달 전의 나로 90%는 돌아간 느낌이다. 10%는 시간적으로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도 만족한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증상이 나타난 것이 겨울방학이라 다행이고, 빠른 시일 내에 연구소를 알게 된 것도 다행이고 방학 내에 치료받게 된 것도 다행이며 지금 이 상태로 학교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서 다행이다.
만약 두 달 전의 상태로 내일 개학을 맞이한다면 지금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이순간의 나는 어떠했을까... ㅎ……. 상상하기도 싫다. 어쩌면 폐인이 되어서 내 꿈과 내 인생이 모두 나락으로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금 숨을 쉬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감히 말한다. 그만 큼 이 눈 문제의 심각성은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치명적이다 못해 잔인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글을 보는 이와 어린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
내가 위에서 증상이 고2겨울방학에 온 것이 다행이라고 한 것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할 수 있을 때 증상이 나타난 것이 다행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선생님께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눈 문제의 심각한 점은 잘못된 자세나 습관으로 만약, 어릴 때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아이 스스로는 증상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시지각장애가 있더라도, 평생을 장애가 있는지도 모른 채, 책을 읽어야 하며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회에서 그런 삶에 따라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원망 그리고 부모의 닦달, 가정의 불화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한마디만은 꼭하고 싶다.
당신 혹은 당신의 자녀들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단지 출발선에 불리한 조건으로 서게 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보길 바라며, 만약 그렇다면 경험자로서 감히 말하건대, 부디 그대로 뛰지 않길 바란다. 남는 것은 절망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처럼 다시 희망을 얻길 간절히 바란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한 마음을 글로 옮깁니다.. 저와비슷한 것을 겪고계신분들에게 도움이 됬...
   
 
무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