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은 저를 보면서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습니다. 저도 세상에 이런 병도 있구나 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난독증 검사를 실시했는데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심하다고 해서 엄마와 함께 안과에 갔습니다. 그래서 엘렌증후군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는 그냥 사춘기인가 했습니다. 뭔가 보는 것도 틀어지고 성격도 이상해져갔는데 저도 엄마도 사춘기를 심하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책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글자도 뿌옇게 보이고 한줄 두줄 건너뛰고 읽던 줄도 놓치고 같은 줄을 반복해서 읽고 했습니다. 글자가 흔들려 보여 제대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글자도 두 줄로 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 엄마가 왜 얘기를 안 했냐고 물었는데, 전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책을 읽어도 이해는 못하고 금방 피곤해지고 눈은 계속 충혈이 되었습니다.
갈수록 점점 심해졌습니다. 나중에는 밝은 빛 아래에서 지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방은 불을 깜깜하고 만들어 어둠속에서만 살았습니다.
당연히 공부도 할 수 없었습니다. 생활도 그랬지만 저는 성격도 이상해져갔습니다. 참을성이 사라졌습니다. 엄청나게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저도 절 참을 수가 없어졌습니다. 화를 내고 나중에는 사과하고, 소리를 지르고 후회하고 계속 그런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엄마에게 너무너무 미안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하다는 말이 부끄럽고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운동신경도 이상해져갔습니다. 손의 움직임이 둔해져서 나중에는 제 신발 끈도 묶을 수가 없었습니다. 글자를 읽은 것도 이상했습니다. 전 영어를 좋아하고 잘 했는데 나중에는 알파벳도 구별할 줄 몰라서 머뭇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옆에서 친구가 가르쳐주곤 했습니다. M과 N, O와 D 이런 걸 헷갈려했습니다. 진짜로 저렇게 됐습니다.
저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전부 한꺼번에 오더니 점점 더 심해져서 저는 어찌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이상하다고 했는데 어느새 제 모든 부분이 비틀어지고 이상해졌습니다. 이 센터를 찾기 전에 마지막 갔던 곳이 신경정신과였습니다. 정신과 약을 받아와서 먹었을 때 이모가 이 센터를 찾아줘 오게 되었습니다.
이모가 가는 단골 안경원 사장님이 이곳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제 증상을 얘기하고 어찌해야하는지 온갖 곳을 찾아도 갈 데가 없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 집 상황은 엄마, 아빠, 이모 할 것 없이 온 집안 식구들이 제가 갈 수 있는 병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정상인데 정상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대답을 해주는 곳도 없었습니다.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모가 혹시나 해서 안경원 사장님께 말했는데, 그 사장님이 이곳을 얘기해주었습니다. 이곳 아니면 갈 데가 없을 거라고 얘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희는 지방에서 바로 연락해 예약을 잡고 바로 올라왔습니다. 엄마와 전 찜질방에서 아예 붙어살면서 센터에 매달렸습니다.
센터 원장님을 만나고 엄마는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엄마는 그때까지 저의 증상을 다 적어와 원장님께 말씀하셨고 원장님도 안타까워하시면서 잘 들어주셨습니다.
원장님은 정말로 힘들었을 거라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 어떤 답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저와 엄마가 다 힘들었을 거라고 많이 위로해주시고 용기도 북돋아주셨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찾아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기서 더 늦었으면 정말로 위험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잘 될 거라고 희망이 있으니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정말로 이런 이상한 병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게 병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어떤 불치병보다 무서웠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그 시간이 끝없는 불안과 고통과 아픔과 눈물이었습니다. 저랑 엄마는 진짜 많이 울었고 아마 아빠도 그랬을 겁니다. 그때는 온 가족이 진짜 너무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습니다. 이런 곳을 들어본 적도 없고 그냥 난독증이 제 상황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훈련으로 낫는다는 것도 이상했고 믿을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센터는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와본 적도 없었기에 불안했습니다.
여기 와서 바로 제 불안이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심도 하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달리 갈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붙박이처럼 계속 했습니다.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더니 어느 순간 제가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진짜 좋은 곳, 필요한 곳이라는 걸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절 살려준 곳이고, 엄마와 아빠도 정말로 고마워하는 곳입니다.
특히나 원장님은 제게 정말 큰 힘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나아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센터에 계신 선생님들두요. 할 수 있다고 파이팅도 해주시고 열심히 훈련도 해주시고 고생한다고 칭찬도 해주시면서 저를 이끌어주셨어요.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이 마음은 제 상황을 겪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 듭니다.
저는 심각한 난독증, 억제, 조절기능 이상, 폭주부족, 양안시 통합문제 등으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시지각의 이상 문제들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이 센터를 오기 전에는 이런 단어들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가 이 센터를 알지 못했고, 알아도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때의 저는 정신과 약뿐이었습니다. 제 생활은 없고 어두운 방안에서 그저 영원히 고립된 채 살았어야 할지 모릅니다. 엄마는 그때가 가장 막막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서울에 와서 매일매일 센터를 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예상 밖으로 체력이 엄청 딸렸습니다. 저녁이 되면 몸이 축 쳐져서 엄마 어깨에 기대서 지내고 했습니다. 엄마가 일부러 고기를 먹일 정도였습니다. 센터에서 시각기능 훈련을 하면서 저의 눈은 점점 좋아졌고 심리도 안정되어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미친 듯이 내지르든 화도 없어졌고 알파벳을 헷갈려하던 것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냥 예전의 저처럼 다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글자가 흔들리지도 않았고 두 줄로 보이는 것도 사라지고 정상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본인데 이게 가장 신기했습니다. 이상함이 사라진 제 모습,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 너무 고맙고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센터에서 훈련을 하면서 어떨 땐 힘들어서 울고, 어떤 날은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고 집에 갈 거라고 데리러 오라고 울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저도 힘들고 엄마도 아빠도 힘든 날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다 지나가고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너무 좋습니다.
한국시지각발달센터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한 번씩 정기검진 삼아 오고 있습니다. 집에서 틈틈이 필요한 훈련도 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은인이 계신 곳입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후기를 남깁니다. 너무 늦은 후기라서 죄송합니다.
만약에라도 저 같은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제가 아플 때 오도 가도 못했던 우리 가족의 모습은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못 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이곳밖에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가족들이 산을 갈 때마다 저는 일부러 큰 소리로 센터를 얘기합니다. 지나가다 안경 쓴 꼬마들이 지나가면 더 말을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한국시지각센터에서 눈 검사 한번만 받아보면 좋을 텐데, 이런 마음이 든다고 얘기하면 엄마가 웃습니다. 지금은 저희 가족이 같이 웃을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한국시지각센터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