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후기

"사시재발, 복시로 휴학하고 비전테라피로 회복한 나의 스토리"

작성자: 한OO  /  등록일: 2018-10-16  /  조회수: 573

 

 

눈의 기능적 문제 : 복시, 사시재발

 

 

2018. 09. 2
한OO (18세)
 
돌이켜 떠올려보면, 처음 눈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땐, 차를 타고 학원에 다녔는데, 차에 타면 나는 항상 지쳐 있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자세를 잡고 멍하니 자동차 내부를 응시하면, 물체들은 1개에서 2개가 되곤 했다. 그것을 나는 그저 신기한 놀이쯤으로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두 개로 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 엄마한테 말해봤다. “엄마, 나 가끔 두 개로 보인다. 엄마도 그래?”
이렇게 물으면, 엄마는 단지 난시때문에 초점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 엄마도 그래하고는 나를 안과로 데려갔다.

나는 6살 때부터 원시로 안경을 써서 안과가 친근했다.
물론 엄마에게도 안과는 편한 곳이었다.
안과에서 ‘에이 설마’ 하는 느낌으로 엄마가 아이에게 사시가 있느냐고 물으면, 늘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단다.
(이 이야기는 내가 다 커서 듣게 되었는데, 그 의사들을 나는 아주 욕해주고 싶었다.
그들은 정확한 진단에 실패한 의사들이다.)

그렇게 나는 힘없이 중학생이 되었다.
내 입으로 하기 민망한 이야기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공부에 의지와 소질이 있어서 전교 1등을 했었다.
중학교에서도 그 의지와 성실함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능력은 달랐다.
공부량과는 반대로, 성적은 서서히 점점 큰 폭으로 내려갔다.
나는 이 원인을 복시에서 찾는다.
아무리 교과서를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글자가 두 개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성적이 오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책을 읽어도 덮고 나면 머리가 백지장이었기에 책과 거리를 두었다.
독서에 소질이 전무하다고 스스로 여겼다.(눈이 나아진 지금은 자칭 책벌레다.)

입학 때보다 현저히 낮은 등수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내 식어버린 공부 열정은 다시 타올랐다.
항상 18살을 동경했고, 그 나이가 되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간고사 시험 전까지 나는 밤 10시까지 야자(야간자율학습)을 했다.
그 시간에는 쉬는 시간도 없이 세 시간을 연속으로 공부했다.
처음 한 시간은 초점이 잘 맞았다.
그 다음이 문제다. 한 시간만 지나면 글자는 두 개가 되어버렸고, 끝까지 공부를 해야 했던 나는 두 물체 중 한 물체만 택해서 공부를 계속 했다. 공부가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
당연히 중간고사 성적은 40등대로 낮았다. 그렇게 공부를 계속 했고,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그 때의 나는 두 물체중 여전히 한 물체로만 공부를 했는데,
글씨가 작았던 국어 자습서는 아예 읽히지 않아 10cm정도 거리에서 봐야 보였다.

그 모습을 목격한 엄마는 깜짝 놀라 공부를 그만두게 했고, 나는 휴학을 하게 되었다. 바로 우리는 안과로 달려갔다. 시력 측정을 해보니, 0.8이나 1.0 정도 가 나왔던 왼쪽 눈은 0.3으로 떨어져 있었다.
오른쪽 눈도 조금 기능이 낮아졌다. 그 후, 복시 검사도 했는데, 안과는 내 복시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난 분명히 사물이 계속 두 개로 보이고, 공부를 못해서 학교를 그만둘 지경에 이르렀는데,
의사는 그저 간헐적 외사시라며 이정도면 일상생활에 지장없다고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데, 우리는 이대로 살아갈 수 없었다.
수술을 해 달라고 하자, ‘이 정도는 해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몇 달 뒤, 사시 각도가 더 벌어지고 나서야 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후 의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눈에서는 피눈물(은유법 아님) 이 흘렀고, 고름이 있었으며,
사물은 원래 보이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두 개였다.
다행이 점점 원래 방향으로 돌아오다 마침내 하나로 보이는 순간이 왔다.
약 일주일.. 짧은 기간 동안 내 세상은 하나였고, 이윽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시 두 개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
재발이었다.

 


안과는 안 되겠구나 싶어 다른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의원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러다 찾게 된 곳이 이곳이었다,
여기에서 기본적인 눈 운동부터 좀 더 난이도 있다고나 할까?
뭐..그런 눈 운동들까지 여러 운동을 꾸준히 했다.
학교도 안 갔으니, 일주일에 세 번, 월,수, 금 이곳에 와서 운동을 했다.
집에서도 한 시간씩 꾸준히 테라피를 진행했다.

당시 몸이 좋지 않았던 나로서는 주 3, 왕복 2시간 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고
내 현실에 좌절감마저 들게 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테라피를 한 결과, 사물은 점점 편하게 하나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쯤 독서를 시작했다.
복시가 나아지니 글씨를 읽는 것이 편해지고, 머리에 내용이 수월하게 들어왔다.
신이나서 그 시기, 약 3개월 동안 거의 30권의 책을 읽었다.
눈 운동도 하고, 독서도 즐기고 하다 보니 복시는 나아졌고, 어느덧 복학할 때가 되었다.
3월에 다시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다시 잠자고 있던 학구열을 불태웠다.
이제는 밤 10시까지가 아닌, 8시까지만 공부를 해도 교과서 내용이 술술 읽혀 충분히 시험대비가 가능해졌다. 그렇게 첫 중간고사 성적을 받았고, 결과는 전교2등이었다. 전 과목에서 세 문제 밖에 틀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지금 학업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모두 복시를 극복하는 동안 많은 독서를 하며 적당히 욕심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복시가 없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복시가 있더라도 이 센터에서 눈운동을 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눈부신 성장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삶을 정상궤도로 올려준 시지각센터와 눈 운동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복시 진단을 거부했던 내 담당의사를 저주한다.)